똑똑해진 사람들
이제는 더이상 시장에서 초과수익을 올릴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예전과 달리 정보를 얻기가 워낙 쉬워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투자자들의 예전에 비해 훨씬 똑똑해졌으며, 따라서 시장의 비효율성을 이제는 찾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2022년 10월 4일에 발생했던 네이버의 유상증자 건에 대해 생각해보자. 개인투자자들은 장이 시작하기 전에 스마트폰의 알람을 통해 네이버에서 새로운 공시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국의 중고거래 플랫폼인 포쉬마크를 인수할 예정이라는 공시이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특수목적 자회사가 유상증자를 하겠다는 공시였다. 포쉬마크가 어떤 기업인지 바로 검색할 수 있었고, Proton Parent,lnc.의 유상증자가 어떤 과정으로 일어나는지 바로 검색할 수 있었고, 규모는 어떤지 바로 검색할 수 있었고, 향후 어떤 결과가 예상되는지를 바로 검색할 수 있었다.
2022년이 아니라 1962년이었다면 어땠을까?
소규모의 개인투자자는 먼저 그 공시를 전달받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거래소에 직접 가서 듣거나, 브로커를 통해 듣거나, 혹은 사업보고서나 나오고서야 알게 됐을 수도 있다.
포쉬마크라는 기업에 대해 어디서 조사해야 했을까? 먼 타국에서 영업하는 먼 타국의 기업에 대해 먼 타국의 언어로 적혀있는 먼 타국의 자료에 대해 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지금이 1962년이라면 전문투자자가 아닌 개인투자자가 도대체 어디서 정보를 얻을까? 심지어 전문 투자자라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유상증자 절차에 대해서는 어떻게 조사할까? 모든 개인투자자가 경영학과를 졸업하여 기업의 자본조달 절차에 대해 알고 있을 수는 없을 거다. 찾아가기도 어려운 도서관에 찾아가 조사를 할 수도 있을 거고, 브로커를 방문하여 물어볼 수도 있을 거고, 물어물어 지인의 지인인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쉽지 않은 과정이다.
1962년에는 단순한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서도 이렇게 멀고 험란한 과정을 겪어야 했다. 반면, 2022년 10월 4일에 사는 우리는 어떠한가?
2022년에는 네이버가 새로운 기업을 인수하고,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 자회사가 모기업인 네이버를 대상으로 유상증자를 실시할 것이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가 대부분의 투자자에게 전달되는 것에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절차가 1962년 10월 4일에 발생했다면, 개인투자자들에게 저 정보들의 의의가 전달되는 데에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1962년의 무지한 대중들의 움직임은 시장의 비효율성을 낳을 것이고, 극소수의 현명한 투자자들은 그 비효율성의 과실을 손쉽게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여전한 동물적 본성
그리고 그 똑똑해진 사람들의 선택은 다음과 같다.
거래량 1등이 나스닥 지수를 3배로 숏치는 etf, 거래량 2등이 나스닥 지수를 3배로 추종하는 etf다. 방향에 상관없이 확신에 가득 찬 모습이다.
거래량 4등이 반도체 지수를 3배로 추종하는 etf, 거래량 5등이 반도체 지수를 3배로 숏치는 etf다. 방향에 상관없이 확신에 가득 찬 모습이다.
그 많은 정보가 투자자들을 현명하게 만들어 준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그 많은 정보가 투자자들의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준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모두가 아는 반도체 사이클
투자자 중에 반도체에 사이클의 존재를 모르는 투자자들은 정말 드물다. 사이클의 상단에 이르면 이젠 내려갈 일이 남았으며, 사이클이 하단에 이르면 이젠 올라갈 일이 남았다. 정확한 극점은 알 수 없더라도, 올라가는 추세는 언젠가 내려올 것이고, 내려가는 추세는 언젠가 올라갈 것이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2021년은 돌이켜보면, 사람들은 반도체 사이클을 잊은 듯이 행동하였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다가오고 있다는 이유로 인하여 반도체 주식의 말도 안 되는 고평가는 당연스럽게도 용인되었다. 그리고 이내 급락이 찾아왔다.
2022년 현재에도 사람들은 반도체 사이클을 잊은 듯이 행동하고 있다. 특히나, D램 반도체의 생산은 삼성전자, 하이닉스, 마이크론 3업체가 안정적인 과점체계를 형성하고 있으니 영원히 수익성이 악화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주가의 하락세는 경이로운 수준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는 정보를 아무도 모르는 듯이 행동하고 있다.
애니멀 스피릿
손실과 이익이 걸린 문제가 닥치면 인간은 결국 수백만년 동안 우리의 생존을 보장해주었던 내면의 동물적 본성에 의지하게 된다. 그 어떤 교육과 그 어떤 정보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동물적 본성을 적절하게 억누를 수 있는 훈련이 되어 있다면, 혹은 선천적으로 그런 원시의 삶에 적합하지 않은 비적응자라면, 시장 참여자들의 동물적 본성에서 창출되는 시장의 비효율성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지.
정보화 시대의 똑똑한 대중과 함께하는 요즘 시장에서도 인간의 동물적 본성에 따른 행동으로부터 초래되는 시장의 비효율성은 여전히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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