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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찰리 멍거 "인간의 정신은 난자와 비슷하다"

by 몽뮤 2022. 6. 29.
"The human mind is a lot like the human egg, and the human egg has a shut-off device. When one sperm gets in, it shuts down so the next one can not get in. The human mind has a big tendency of the same sort."

 

"인간의 정신은 인간의 난자와 비슷하다. 난자는 차단 장치를 가지고 있다. 정자 하나가 안으로 들어오면, 난자는 다른 정자가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닫는다. 인간의 정신은 이와 같은 종류의 강한 경향을 가치고 있다."

 

 

 

그저 먼저 접했을 뿐인 것들

단지 어떠한 종류의 이념, 사상, 이론을 "먼저" 배웠다는 이유로 그것에 심취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대학 신입생들에게 이러한 경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모두가 비슷한 동네에서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교육을 받으며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것을 배우며 살았던 고등학교를 벗어나, 온갖 사상과 이념과 이론과 학문과 집단들이 미쳐 날뛰는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그때 처음 들어간 동아리에서 접한 이야기, 처음으로 친하게 지내던 선배를 통해 접한 사상, 처음으로 들어간 교양 과목 교수를 통해 듣게 된 학설, 처음으로 들어간 학회에서 접한 이념 등에 완전히 빠져들게 되는 건 흔한 일이다. 그리고 일단 거기에 몰두하면 다른 종류의 생각은 더 이상 마음속에 들어올 수 없게 된다.

 

A라는 종교권에서 태어난 사람이 B 종교권에서 태어났어도 A 종교인일까? B 종교권에서 태어난 사람이 C 종교권에서 태어났어도 B 종교인일까? 어떤 종교인은 진실로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어떤 종교를 믿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그 종교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종교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다른 방식의 생각은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일까?

 

서남권에서 태어난 중년의 X 정당 지지인은 동남권에서 태어났어도 X 정당을 지지할까? 동남권에서 태어난 중년의 Y 정당 지지인은 서남권에서 태어났어도 Y 정당을 지지할까? 어떤 정당에 대한 맹렬한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은 정말로 자신의 냉철한 이성을 통해 사안들을 분석하고, 그를 바탕으로 자신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정당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자신이 태어난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사고방식을 처음으로 접한 후에,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사고방식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마음의 입구를 닫아버린 것뿐일까?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사고방식은 과연 많은 대체재 중에서 심사숙고하여 선택한 최선의 사고방식일까? 아니면 그저 가장 처음으로 접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다른 사고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 뿐일까?

 

사실 돌이켜 보면 그냥 가장 먼저 접하게 되었다는 이유로 어떠한 사고 방식을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로 삼아버리는 실수를 하고 있는 게 아닌지.

 

 

 

 

그저 먼저 접했을 뿐인 투자 방식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투자관은 과연 다양한 투자방식 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고 합리적인 방식을 내가 심사숙고 끝에 택한 것일까? 아니면 가장 처음으로 강하게 접한 투자방식일 뿐이고, 이젠 다른 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는 걸까?

 

처음으로 주식 투자를 접하고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 헤매는 주린이를 떠올려보자. 우리 모두 한 때는 그런 주린이었을 테다.

 

단타 위주로 하는 투자자는 과연 진실로 단타 위주의 투자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자신이 가장 처음으로 정보를 접한 곳에서 대세인 방식을 받아들인 것일 뿐이고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방식에는 마음에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인가.

 

장기투자를 위주로 하는 투자자는 과연 진실로 장기투자 위주의 투자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자신이 가장 처음으로 정보를 접한 곳에서 대세인 방식을 받아들인 것일 뿐이고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방식에는 마음에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인가.

 

가치투자를 하는 투자자는 과연 진실로 가치투자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자신이 가장 처음으로 정보를 접한 곳에서 대세인 방식을 받아들인 것일 뿐이고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방식에는 마음에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인가.

 

기술적 분석을 위주로 하는 투자자는 과연 진실로 기술적 분석을 바탕으로 한 투자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자신이 가장 처음으로 정보를 접한 곳에서 대세인 방식을 받아들인 것일 뿐이고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방식에는 마음에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인가.

 

매크로 투자를 하는 투자자는 과연 진실로 매크로 투자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자신이 가장 처음으로 정보를 접한 곳에서 대세인 방식을 받아들인 것일 뿐이고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방식에는 마음에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인가.

 

주린이 시절에 카페, 블로그,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 등에서 어떤 투자방식을 처음 접한 후에, 그 매체에 매일 드나들면서 그곳에서 유행하는 그 투자관을 별다른 고민없이 자연스럽게 내재화시켜 버린 것은 아닐까.

 

 

 

익숙함과 합리성

당연하게도, 항상 모든 일에 대하여 모든 가능한 대안을 따져보며 현재의 것이 아닌 최선의 대안으로 매번 선택을 바꿔가며 일을 처리할 순 없다.

 

매일 점심 시간마다 가장 최선의 맛, 분위기, 영양, 가격 등을 따져가며 메뉴를 정할 수는 없다. 매일 퇴근길마다 당시의 날씨, 유가, 교통 상황, 차량의 상태, 나의 기분 등을 따져가며 퇴근길을 정할 수는 없다. 매번 멀미약을 살 때마다 약국의 위치, 약사의 실력, 약사의 친절함, 성분의 함량, 제약사의 평판, 나의 가용 예산 등을 모두 따져가며 예산제약하의효용극대화를 추구할 수는 없다. 그저 익숙하고 편한 선택을 지속할 뿐이다.

 

더군다나 익숙한 것에 더 애착을 느끼는 우리의 본성은 친구, 연인, 가족, 사는 집, 사는 지역, 내가 속한 공동체 등에 정착하여 안정감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성향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항상 다른 최선의 대안을 찾아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사람은 신뢰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투자한 종목의 경영자를 친구처럼, 투자방식을 연인처럼, 투자한 종목을 가족처럼 여기는 건 멍청한 짓이다.

 

 

워렌 버핏은 지금까지 자신의 투자 방식을 몇 번이고 바꿨다.

 

  1) 어린 시절 온갖 기술적 분석 방식을 통원한 투자

  2) 그레이엄을 만난 후 시작한 담배꽁초식 투자

  3) 찰리 멍거의 영향과 시즈캔디 인수를 계기로 시작한 '위대한 기업'에 대한 투자

   3-1) 자본적 지출이 작은 기업만을 선호하다가 오히려 BNSF, 버크셔 에너지와 같이 자본적 지출이 극단적으로 많이 필요한 투자

   3-2) 보통주만을 선호하다가 신용경색에 빠진 기업을 대상으로 고배당 상환우선주 방식으로 하는 투자

 

 

반면, 나를 비롯한 버핏 추종자들은 오히려 "가치투자"에 대해 더욱 근본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 건 왜일까. 정작 워렌 버핏은 유연하게 자신의 사고방식을 변경해왔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이 과연 가능한 모든 대체재 중에서 세심하게 따져가며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인지, 아니면 그냥 가장 먼저 접한 방식이라서 이제는 다른 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인지 숙고해 보아야 할 것.

 

익숙한 것이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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